Saturday 1 Novem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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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4 days ago

들녘 같은 사람 최민화

최민화는 민청련 출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 중 한 사람이다. 창립을 앞두고 민청련을 이끌고 나갈 수장을 선정하는 일이 마지막 과제로 떠올랐을 때, 그가 김근태를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의장을 맡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민청련 활동 내내 김근태를 보좌하며 회원들의 맏형 노릇을 했다.


치열하게 다정한 군자

최민화의 외모는 당시 흔히 보던 민주화 투사의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듬직한 풍채에, 둥글고 인자한 얼굴, 그 얼굴엔 늘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나는 그를 민청련 창립 때 처음 만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봐왔는데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에게 무언가 어려운 일을 얘기하거나 고민을 상담할 때면 늘 어, 그래 그래 하면서 마치 품이 넓은 할아버지가 손자 달래주듯 했다.

그런 그였기에 시인 고은은 그를 들녘 같은 사람 이라고 했다. 들녘 하면 막힘 없이 펼쳐진 너른 벌판이 떠오르고, 가을날 고개 숙인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풍요로움을 연상한다. 날카로움이나 날선 말싸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 최민화는 평화로운 가을 들녘 같은 사람이다.

시인 김정환은 그를 가리켜 치열하게 다정한 군자 라고 했다. 김정환은 1983년 민청련 창립 논의를 하던 자리에 참석해서 최민화를 처음 봤다. 당시는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살을 당한 그 경악과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이 우리의 전신을 휘감고 덜덜 떨게 만들면서 우리를 집요하게 길들이던 때 였다. 그만큼 논의는 결연했고, 분위기는 숙연하면서도 격앙됐다. 그런데 그런 회의장 한 귀퉁이가 이상하게도 밝았다고 한다.

유난히 하얀색 피부를 가진 맘씨 좋은 아저씨 같이 생긴 사람이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던 거다. 그는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도 상대방 의견 중 장점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말했다. 김정환은 충격을 받았다. 상대방의 장점을 제 것으로, 제 온화함으로 바꾸어 내면서 자신을 보충하고 그렇게 완성된 자신의 의견을 겸손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추진하는 능력에 감탄한 그는 최민화를 치열하고, 다정하고, 군자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최민화는 1969년에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시대가 평온했다면 신학을 공부해서 교수가 되거나, 아니면 목회자가 되어 사람들을 피안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그렇게 놓아두지 않았다.

1969년은 연초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3선 연임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박정희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조국 근대화 와 조국 중흥 이라는 민족적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며, 헌법에 규정된 4년 임기에 1차례 연임으로 최대 8년으로 제한된 대통령 임기를 자신만은 예외로 하여 한 번 더하여 3선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당연히 야당에서 반대하고 나섰고, 전국의 주요 대학에서 이를 저지하자는 시위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최민화는 헌법을 고쳐서 집권을 연장하겠다는 너무나도 명백한 부조리를 눈앞에 두고 강의실에 앉아 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연세대에서 있었던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앞장섰고 그 결과 주동자로 지목되어 지명수배되는 신세가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가 졸지에 전국에 지명 수배된 범죄가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최민화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앳된 지명수배자는 얼마 못 가 검거된다. 그러나 지도교수의 간청과 보증 덕분에 감옥 신세는 면하고 대신 군대에 입대하는 것으로 처리됐다.


최민화 평생의 스승은 함석헌

군대를 제대하고 복한 때가 1972년.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던 참에 이번엔 10월유신 이 터졌다. 세상은 최민화가 학교 교정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큰 사건을 터드리는 것 같았다. 최민화가 입학하던 해에 3선 개헌을 한 박정희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해에는 3선으로도 성이 안 차, 죽을 때까지 집권하겠다는 영구집권 체제를 선언한 것이다.

3선 개헌 반대에 앞장섰던 최민화가 이번에도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즉각 유신반대 시위를 조직하고 연세대생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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