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 Novem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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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17 hours ago

이태원 생존자가 절대 잊지 못하는 말, 너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지난 여름,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을 찾던 중 한 블로그 글을 접했다. 그래, 나는 그날 이태원에 있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에는 재영(가명)씨가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 활동을 했던 경험과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 빼곡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참사 이후 나도 거기서 죽었어야 했다 는 생각과 함께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오랜 시간 동안 통과해 온 그는 1주기 추모대회에서 포스트잇에 이러한 문장을 썼다고 한다.

이제 마주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늘나라에서 편안할 수 있도록, 가족분들과 같이 싸우겠습니다. (…) 그러니 저를 잘 살펴봐 주세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마음으로 행동하는지 감시해 주세요. 저 정말 잘 살아가겠습니다.

재영씨가 가진 것은 흔들리는 삶을 넘는 단단함, 그리고 그보다 큰 용기였다. 그가 마주하는 것 으로, 살아가는 것 으로 다다른 과정을 좀 더 듣고 싶었다. 그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글을 작성한 2023년 11월로부터 1년 반이 넘게 지난 현재,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댓글에 호박랜턴의 연락처를 남겼다. 얼마 후, 호박랜턴의 정원과 민애는 서울의 한 공간에서 재영씨와 만날 수 있었다.

재영씨는 90년대 후반생 여성이다. 20대 초반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지금까지 쭉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 귀여운 아이들은 무사히 돌아갔을까

재영: 이태원은 이전에 그렇게 많이 가본 건 아니었고, 핼러윈이나 그럴 때만 갔었어요. 그날 함께 갔던 친구는 고향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그 친구가 처음 서울에 놀러 오던 날에도 이태원을 갔던 기억이 나요. 저한테 있어 이태원은 서울 구경하는 장소 라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크리스마스나 핼러윈은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뭔가를 할 수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고, 다들 그날을 신나 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날만을 위해서 해외 배송 시켜서 몇 달 전부터 준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때 같이 살던 친구가 상경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그런 거 엄청 좋아하는 친구여서. 원래는 분장할 생각도 없었는데 친구가 분장해야지, 해야지 해서 갑자기 재료 사서 분장하고 그랬어요. 저희가 좀 게을러서 늦게 준비해서 버스 타고 이태원으로 가는데, 창밖으로 젊은 엄마들이랑 아이들이 보이는데, 아이들이 너무 귀엽게 핼러윈 분장을 한 거예요. 친구에게 봤어? 쟤네 봐, 너무 귀엽다! 저런 애들을 이길 수가 없다 이랬어요. 그래서 친구가 동영상을 찍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저는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도 그 아이들을 봤던 게 생각나요. 아이들 어떻게 됐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거기 있던 그 아이들은 집에 무사히 갔을까? 그날 찍은 영상이 되게 많았거든요. 틱톡 챌린지 한다고. 근데 그 영상도 1년 뒤쯤에 봤어요. 계속 못 보다가 (피해자 인정 신청) 증명해야 할 때쯤 봤던 것 같아요. 사람이 엄청 많았으니까, 그때 사진을 다시 보면 이 사람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거죠. 너무 보기도 힘들었고, 떠올리는 것도 힘들었고, 이태원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도 힘들었어요. 저는 분향소를 아직도 못 갔어요. 가면 그 사람들 얼굴이 다 있으니까.

정원: 당시에 라이프 가드 자격증이 있어서 구조를 선뜻 하겠다고 뛰어가셨다고 하셨어요.

재영: 자격증을 그해 봄에 땄으니까 사실 얼마 안 됐을 때였고… 모르겠어요. 저도 왜… 처음에 사람들이 막 실려 나오고, 남자분들 저기 가서 도와주세요! 하고. 뭐지? 난 여기 가만히 있어도 되나? 하다가, 제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러면서. 사실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해결을 못 했다 는 생각, 끝까지 도움을 안 주고 내가 떠났다 , 더 할 수 있는 걸 못 했다 는 게 너무 컸어요. 제가 분향소 못 간다고 했던 게, 제가 구조 활동했던 사람의 얼굴이 기억이 안 나거든요. 처음에는 기억이 났던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상태가 괜찮아지면서 그게 잘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

정원: 그런 죄책감 같은 감정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최선을 다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재영: 스스로 생각할 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감정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나가서 CPR 할게요 한 것도 죽을 줄 알고 나간 게 아니고, 그냥 가서 그 사람 살린다 , 나 살리는 법 알아 해서 간 건데, 사실 못 살렸어요. 그러면… 저도 살리는 법만 훈련받았지, 못 살렸을 때 어떻게 하는지는 훈련 안 받았단 말이에요. 이제 뭐 해야 돼? 그런 순간이 왔던 것 같아요. 또 그 죄책감이라는 것도 구조를 다 같이 하는 게 아니라 딱 몇 명이서 한 사람만 맡는 식이니까, 제 느낌에는 책임 분산이 되지 않고 너무 집중된 죄책감인 것 같았어요. 우리가 못 살렸다 가 아니라 내가 못 살렸다 가 되니까.

물론 지금 생각하면 복합적으로 모든 것이 다 잘못됐고 통제가 잘 안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제 마음속에는 내가 못 살렸다 는 게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여전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구조하려고 했던 분의 얼굴이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세 명이서 둘러 앉고 한 사람을 맡았는데, 내가 그 사람을 기억 못 해. 왜? 나는 너무 괜찮은데, 내가 그 사람 얼굴도 몰라, 이름도 몰라, 아무것도 몰라. 근데 그 사람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어 이렇게 돼버리니까, 그러면 안 되지 않나?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고.

정원: 그런 죄책감이 사실 다 같이, 혹은 국가가 나눠 가져야 하는 감정인데. 그게 현장에 계셨던 생존자, 구조자분들한테 떠넘겨졌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경찰이나 구조대조차 이 일에 대해서 파악을 못 하는 상황이 있었잖아요. 가령 경찰이나 구조대가 이쪽 골목을 보고 있는데, 사실 다른 쪽에 더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나서야 아셨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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