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 November 2025
Home      All news      Contact us      RSS      English
ohmynews - 16 hours ago

나무는 말한다, 버릴 것을 버려야 다음 봄이 온다 고

가을의 문턱, 아침 공기가 부쩍 차가워졌다. 바람에 억새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하늘공원을 걷다 보면, 길가의 나무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옷을 갈아입고 있다. 어떤 나무는 부드러운 노랑으로, 어떤 나무는 따스한 주황으로, 또 어떤 나무는 뜨겁게 타오르는 진홍빛으로 빛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나무마다 색이 다르게 물드는 걸까? 그 비밀은, 퇴장 과 등장 의 섬세한 타이밍에 있다.

초록의 퇴장, 본색이 드러나다

여름 내내 잎을 초록으로 물들이며 광합성 공장을 돌리던 엽록소는, 가을이 오면 묵묵히 제 역할을 마치고 서서히 분해된다. 그때 비로소 초록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다른 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잎 속에는 사실 처음부터 여러 색소가 공존하고 있다. 노란빛을 내는 크산토필, 그리고 당근이나 오렌지의 주황빛을 닮은 카로티노이드가 대표적이다. 이 색소들은 여름에도 잎 속에 있었지만, 엽록소의 강렬한 초록빛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가을이 되면 여기에 특별한 배우가 한 명 더 등장한다. 바로 붉은빛의 안토시아닌이다. 맑은 햇살과 차가운 밤이 반복되는 일교차 속에서 잎 속의 당분이 늘어나면, 그 당을 바탕으로 새롭게 합성되는 색소가 바로 이 안토시아닌이다. 그래서 맑은 낮과 차가운 밤이 이어질수록 붉은 단풍이 유난히 선명하고, 반대로 흐린 날이 많거나 가뭄이 지속되면 색이 덜 고와 보인다.

모든 나무가 안토시아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나무는 노랗게, 어떤 나무는 주황빛으로, 또 어떤 나무는 진홍빛으로 물든다. 은행나무의 황금빛, 사탕단풍의 주황빛, 단풍나무의 붉은빛이 그 증거다.

낙엽은 포기가 아니라 결단이다

색을 바꾼 잎은 더 이상 에너지를 만들지 못한다. 광합성 공장이 문을 닫으면, 잎은 오히려 나무의 수분을 빼앗는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나무는 잎자루 부위에 떨켜(잎떨어짐층) 라는 얇고 정교한 막을 만들어 스스로 연결을 끊는다. 이 과정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한 생의 전략적 결단이다. 잎을 비워낸 자리에 나무는 남은 영양분과 수분을 줄기와 뿌리에 고이 모으며, 긴 계절을 건너갈 준비를 한다.

제재소에서 일하다 보면 이 장면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나무의 속살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에 켜켜이 쌓인 계절의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테 하나하나에 새겨진 흔적은 단지 생장의 증거가 아니라, 견딤의 역사다. 나무가 잎을 버리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생존의 지혜이며, 그것은 마치 사람이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고 다음 삶을 준비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전체 내용보기


Latest News
Hashtags:   

Sour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