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서 수상함이 감지된 것은 석 달 전쯤이다. 칼퇴근을 하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잠드는 것이 낙이었던 그의 귀가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밤 10시에서 11시쯤 귀가했는데, 술기운은 없었다. 맨정신으로 그때까지 무엇을 하고 들어온 것인지. 게다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늘 싱글벙글하고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 더 이상했다. 지인과의 문자, 통화가 잦아졌고 급기야 주말에도 혼자 외출하는 날이 많아졌다. 집에 오면 피곤하다며 고꾸라져 잠만 잤다. 감이 왔다. 외도였다.
남편의 외도 상대는 금세 밝혀졌다. 머리채 잡고 싸울 일은 없었다.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온 마음과 몸을 바쳐 사랑한 상대는  당구 였다.
당구에 빠진 남편
    
처음엔 TV 중계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이론 공부에 몰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격증 공부를 위해 사용했던 태블릿을 입사각과 반사각을 그려가며 계산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장난처럼 보였던 남편의 당구 공부는 당구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닌  수준이 되었다.
실전 연습을 하고 집에 오면, 바둑에서 하듯이 그날의 경기를 복기했다. 설계한 대로 되지 않았다며 아쉬워 하는 날도 있었고, 과학적인 스포츠라 계산을 잘하면 그대로 들어맞는 게 당구라며 흥분하는 날도 있었다. 연애까지 합쳐 30년 가까이 남편을 봐왔지만, 그렇게 달뜬 얼굴은 처음이었다. 제대로 바람이 나버렸다.
남편은 하고 많은 스포츠 중에 왜 하필 당구에 관심을 두게 됐을까? 한국갤럽이 2024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대 남성이 즐겨하는 취미는 낚시, 등산, 골프 순이었다. 직접 하는 스포츠 중 즐겨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골프, 등산, 축구, 걷기, 달리기 순으로 답했다. 당구는 어떤 목록에서도 10위 안에 없었다. 당구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는 프로당구협회의 추산이 무색해진다.
우리나라는 2019년 프로당구협회가 출범하면서 프로당구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김가영, 스롱 피아비, 강동궁 같은 스타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고 한국이 3쿠션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프로당구는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반면 생활 당구는 사라지는 추세다. 2011년 2만 5159개였던 당구장은 2023년 1만 4866개로 급감했다. 당구장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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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iday 31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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