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3 October 2025
ohmynews - 5 hours ago
초기 항일독립전사 양성소였던 백서농장 을 아시나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독립운동가에게 군자금을 대는 일, 두 번째는 외교로 국권 회복에 이바지하는 일, 세 번째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일, 네 번째는 독립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준 일 등이다. 이 모두 당시엔 대단한 위험을 무릅쓴 눈물겨운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포악 무도 간악한 일제에 맞서 가장 적극적으로 투쟁한 방법은 그들과 정면으로 총칼을 들고 맞서 싸우는 무장 투쟁이었다. 무장 투쟁론자들은 이 방법만이 오로지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고 행동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세계 정세를 모르는,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무모한 투쟁이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총칼로 나라를 빼앗은 흉악 무도한 일제 무리에게 도의나 양심으로 호소해 봤자 이는 한낱 쇠귀에 경 읽기 요, 그들은 그런 호소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것이다. 헤이그 밀사 사건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또 외세에 의존해서 국권을 회복한다면 광복 후, 또 다른 외세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일제 강점 초기 3대 무장 항쟁 지도자 3인
당시 일제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 로, 이는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 무모한 투쟁이요,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다. 그것도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땅에서, 갖은 악조건 속에서 무장 투쟁을 한다는 건 상상을 초월한 가시밭길이었다.
당시 이국에서 용감하게 무장 투쟁하신 분들은 후일에 무슨 대가를 바라고 투쟁한 것이 아니었다. 이 땅의 백성이 된 도리로, 마땅히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사학자들은 일제 강점 독립운동 초기 당시 중국 만주에서 벌인 3대 무장 항쟁 지도자로 김동삼(金東三), 오동진(吳東振), 김좌진(金佐鎭) 장군을 꼽고 있다. 만일 우리 역사에 이분들의 빛나는, 피 흘린 투쟁사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얼마나 참담한 심정일까?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어찌 말할 수 있으며, 민족 정기를 어찌 논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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