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9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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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24 hours ago

밑도 끝도 없는 고요가 사랑으로 완성되는 여정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있으면 강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강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두텁나루의 아침은 또 다른 세상이
다. 새들은 날아오르거나 자맥질하거나 바위에 외다리로
서 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경이로운
풍경 속 점 하나로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세상은 그
세상대로 이 세상은 이 세상대로 쪼그려 앉아 다리가 저린
세상,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해가 가고 한 생이 간다. 그렇
게 지리산 어느 구석 바위틈에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구절
초 하나 홀로 피었다 진다.
- 뒷간에 앉아 보낸 세월 전문, 시집 lt;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gt;(솔시선, 2025년)
보름 전쯤, 합천 가야산에 갔다가 산중에 핀 구절초를 보고 온 다음 날 이 시를 읽었다. 하산길이었고, 아찔하고 험한 구간이었다. 소월의 시처럼 저만치서 하얗게 핀 구절초에게 저절로 눈이 갔는데. 그 뒤에도 두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내 시작 노트에는 너를 두고 가는 것 같아서 라고 적었다.


시집 lt;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gt;에는 해설 대신 lt;시인의 산문 gt;이 수록되어 있다. 거기에 두텁나루숲 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박 시인은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섬진강 하류에 거처를 마련하고 산 것이 벌써 17년이다 라고 적었다. 그 17년 된 한옥의 당호가 두텁나루숲 인데, 두껍이 蟾, 나루 津, 섬진을 풀어 당호를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박 시인은 이 숲 그늘에 앉아 밑도 끝도 없는 고요를 기다렸다 라고 술회하고 있다.

밑도 끝도 없다고 했지만, 박 시인의 시를 오래 읽어온 독자인 내 눈에는 그 끝이 조금은 보이기도 한다. 그 전환점이랄까 하는 것이 위에 인용한 표제시에서는 그래, 나도 그러고 있을 뿐이다 라는 구절 언저리쯤이 아닐까 싶다. 현대 용어로는 화장실을 뜻하는 뒷간 에서의 명상을 시화한 이 시는 구절초 이야기로 끝이 나는데 전날 가야산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눈길 주지 않 고 홀로 피었다 지는 구절초에게 품은 시인의 마음이 사랑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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