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는 전(前) 정권 청산 이 자주 일어난다. 이승만·장면·전두환·노태우·노무현·박근혜 정권은 바로 다음 정권에 의해 청산 작업 혹은 정치 보복을 당했다.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들에 의해 자연스레 청산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역대 정권의 전 정권 청산에서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준 미군정은 마치 금단의 구역인 소도(蘇塗)처럼 지난 80년간 철옹성을 유지해 왔다.
미군정기인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대한민국 정부의 첫 번째 헌법은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 (제100조), 이 헌법 시행시에 재직하고 있는 공무원은 이 헌법에 의하여 선거 또는 임명된 자가 그 직무를 계승할 때까지 계속하여 직무를 행한다 (제103조)라고 규정함으로써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의 연속성을 인정했다. 미군정이 만든 제도적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청산하자면 미군정의 부조리를 부득이 건드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시기의 부조리는 오랫동안 성역으로 남아 있다.
이관술 선생의 억울한 죽음,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한 이유
미군정의 부조리는 한둘이 아니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는 인권 탄압이다. 미군정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한국에 이식했다고 인식되고 있지만, 외형상의 표방과 달리 미군정의 수준은 조선총독부의수준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이현복 부장판사)가 재심개시결정을 내린 이관술 사건이 그 증거 중 하나다. (관련 기사: 넝마주이의 놀라운 정체... 모두 그를 주목했다 https://omn.kr/29exf)
1902년에 지금의 울산에서 태어나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중등) 교사가 된 이관술은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노동운동과 공산주의운동에 참여했다. 1933년과 1941년에 구속된 적이 있지만, 그는 웬만해서는 검거되지 않는 홍길동 같은 인물이었다. 솥땜장이·엿장수·풍각쟁이·거지·넝마주이 등으로 변신해 가며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그런 고생을 하다가 해방을 맞은 뒤 박헌영과 함께 좌파 지도자 그룹을 형성한 그는 얼마 안 가 조작 냄새가 물씬한 공안사건에 휘말려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 상태에서 한국전쟁 중에 지금의 대전시 골령골에서 총살을 당했다.
그가 연루된 사건은 조선공산당 간부들이 인쇄소인 조선정판사에서 위조지폐를 찍어냈다고 1946년 5월 19일에 미군정이 발표한 조선정판사 사건이다. 그해 10월 23일 자 lt;경향신문 gt; 2면 좌중단이 사실인가? 아닌가? 세론이 분분 하다고 지적한 데서도 나타나듯이 이 사건은 증거가 불충분했다. 통일적인 한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5월 6일 무기한 휴회에 들어가 남북분단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발표된 이 사건은 분단반대진영의 발목을 붙드는 효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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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14 October 2025
ohmynews - 8 hours ago
미군정에 잡혀간 독립운동가의 억울한 죽음... 재심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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