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3 Novem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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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7 days ago

50년 만의 개봉, 당대 드림팀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 향연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 lt;성 gt; 속 주인공 K 는 목적지인 성 에 도착하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성은 신기루처럼 그의 앞을 맴돌 뿐, 끝내 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K는 모두의 만류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이할 만큼의 집념을 보이며 (미완성으로 끝난) 소설 마지막까지 성 주위를 떠돈다.

#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말발굽이 닿는 데까지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목표를 갖고 고국 마케도니아를 떠나 대군을 이끌고 끝없는 원정에 나섰다. 그가 알던 세계의 동쪽 끝은 인도의 갠지스강이었고, 온갖 모험 끝에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고향에서 죽고 싶다는 노병들의 항명 때문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는 울었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죽는다.

세상 끝의 요새에서 겪은 일


젊은 귀족 청년 조반니 드로고 는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첫 부임지로 국경지대의 바스티아니 요새로 발령받는다. 대도시의 풍족한 삶을 떠나 험준한 산맥과 끝없는 사막 한복판의 변방 요새로 가야 하는 그의 마음은 기대와 불안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말로만 들었던 변경, 세상의 끝 처럼 여겨지는 요새로 긴 여정을 떠난다. 길을 잃고 헤매던 끝에 요새 수비대를 만날 수 있었다.

바스티아니 요새는 북쪽 왕국과 국경선이 획정되지 않은 무주지를 수비하는 요충지이자, 오래전 사막을 넘어 침략했던 타타르인을 방비하는 전초기지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경계의 일상만 남았다. 그러나 국가의 공식 입장은 이 요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엄격한 규정과 비상한 대비를 주문한다. 드로고는 자신이 알던 것과 직접 겪는 것 사이에서 혼돈에 휩싸인다.

그를 맞이한 상관과 동료들의 태도도 모호하기 짝이 없다. 어떤 이는 자신을 갉아먹는 지독한 권태에 지쳐 제발 사막 건너에서 타타르인이 출몰하기만 기다린다. 지독한 평화보다 차라리 전투를 염원하는 것. 반면에 군 경력을 위해 이곳에 머무는 이들은 진급과 출세를 위해 시간을 소비하거나, 아무런 사건 없이 하루빨리 전출 명령서 받기만 기다린다. 그런 기묘한 이중성이 요새 전체에 흐른다.

실은 드로고 역시 핑계를 만들어 얼른 이곳을 떠나려는 의도를 품은 채 도착했다. 그는 행정 착오 탓으로 자신이 엉뚱한 장소에 부임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요새에 오래 머문 고참들은 자신들이 평생을 바치며 무의미한 반복만 거듭한 이곳에서 처음 그들이 기대한 영웅적 위업을 이루길 갈망한다. 길게는 수십 년, 광활한 공허 속에 세월을 보낸 탓에 이제 속세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떠날 기회가 돌아와도, 심지어 진급하거나 쾌적한 도시로 임지를 옮기란 명령도 거부하는 집착은 전염병처럼 요새를 떠돈다. 그러던 어느 날, 안개 자욱한 저 너머에서 무엇인가 관측된다.

당대 명배우들의 연기 향연


1940년 출간된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1976년 영화가 근 50년 만에 지각 개봉한다. 소설 역시 80년 넘게 지난 2021년 국내 첫 출판이 이뤄졌으니 거의 반세기, 한 세기 만에 도착한 셈이다. 기술 발전이 몇 년 사이에 몰라볼 만큼 발전하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해묵은 옛날 영화가 지각 도착한 데 불과해 보일 수도 있겠다. 20세기 소설 중 환상문학 고전으로 손꼽힐 원작이라도 국내에선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런 영화에서 관객이 가장 먼저 주목할 건 현란할 만큼 총출동한 대배우들의 연기 향연이다.

주인공 드로고 역의 자크 페렝, 어쩌면 주인공의 미래라 할 오르티츠 역 막스 폰 쉬도브, 드로고를 끝까지 지켜보는 군의관 역 장루이 트랭티냥, 관료주의적 장군 역 필립 누아레, 선배 장교와 부사관으로 분한 줄리아노 젬마, 프란시스코 라발, 페르난도 레이, 로랑 테르지에프, 헬무트 그림, 비토리오 가스만까지 동시대 유럽 예술영화 애호가라면 한 명이라도 빼놓을 수 없는 얼굴들이 화면 내내 가득하니 눈이 지루할 틈이 없다. 일종의 드림팀 격이다.

이 화려한 면면이 고립된 변방 요새에서 한데 엉켜 어떤 풍경을 그릴 것인가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저 감독이 스타 배우를 선호해서 몽땅 끌어모은 게 아니란 이야기. 마치 세상의 끝 같은 변방 요새에서 일상의 삶과 동떨어진 채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 서로의 긴장과 갈등, 무엇보다 각자 거울을 바라보듯 자기와의 사투를 벌이는 인물들을 미묘하게 형상화하려면 이 정도 진용은 필요하다는 감독의 선택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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