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3년 조선 영조는 친모 숙빈 최씨의 제사에 종묘와 마찬가지로 술항아리를 배치해 ‘작(爵·발이 세 개 달린 제사용 술잔)’을 사용하고 폐백을 추가하도록 했다. 2년 뒤엔 숙빈의 호칭을 ‘선비(先妣)’로 고쳤다. 사망한 어머니를 가리키는 ‘비(妣)’는 원래 사망한 아버지인 ‘고(考)’와 짝을 이루어 적통을 뜻하는 표현으로, 후궁인 생모에게는 쓸 수 없었다. 영조는 출신이 미천했던 어머니의 격을 높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결정은 의례 규정집 ‘궁원식례(宮園式例)’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경기 성남시 분당구)이 최근 장서각 기획전 ‘칠궁(七宮),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을 개막했다. 칠궁은 조선 왕들의 생모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사당으로, 현재 청와대 영빈관 서쪽에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 왕통과 관련해 미묘한 정치가 계속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영조는 숙빈을 위해 국왕 사친(私親)의 사당과 무덤을 묘묘(
Wednesday 15 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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