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하게 스러져 간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 널리 알려지고 역사로 바로 서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일부에서는 그 투쟁이 진행 중이다. 제주 4.3, 부마항쟁, 광주항쟁 등. 항쟁 이란 단어가 붙기까지 국가와 시간과 싸운 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여기 무려 45년 전 일임에도 여전히 국가로부터 인정과 사과는커녕 진상규명까지 이르지 못한 또하나의 비극이 있다.
박봉남 감독이 지난 6년간 만들어 낸 다큐멘터리 lt;1980 사북 gt;은 제목대로 1980년 4월 21일을 기점으로 벌어진 탄광 노동자들과 사북 주민, 이들을 고문하고 괴롭긴 공권력의 진실을 파헤친 작품이다. 지난 24일 6년 동안 사북사건 을 추적한 감독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복잡다단했던 갈등의 양상
사북사건은 당시 최대 민영 탄광 기업이던 동원탄좌 노동자들이 조합장 직선제를 요구하며 궐기한 것에 경찰 및 군대가 개입하면서 일어난 비극이다. 1979년 대의원 투표로 당선된 이재기 당시 지부장의 어용 행위를 비판하며 직선제를 요구했던 노동 행위였지만 1980년 정보과 경찰이 노동자를 차로 들이받고 미수습한 일로 노동자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결국 계엄사를 주축으로 합동수사팀이 꾸려져 가담자들을 강제 고문, 조사하며 숱한 피해자를 낳았다.
이 사건이 비극적인 또다른 이유는 공권력과의 갈등이 전부가 아니라 주민들끼리도 서로 의심하며 결국 큰 상처를 남겼다는 데 있다. 경찰 정보과 형사가 탄광 노동자를 차로 들이받고 도주한 일로 촉발된 경찰서 점거 사건, 나아가 이재기 지부장의 아내 감금 사건 등은 사북 사건을 짚을 때 피할 수 없는 비극이다.
영화화 제안은 박 감독의 대학 동문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이 했다. 전북 부안 출신으로 대학 입학 때야 비로소 민주화 항쟁의 진실을 알게 된 박봉남 감독은 같은 대학 1년 선배였던 고 박종철 열사를 비롯, 당시 학생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황인욱 등에게 부채감을 안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박봉남 감독은 2019년도에 갑자기 황인욱에게 전화가 왔다. 2020년이 사북 항쟁 40주년이니 사북에 한번 오라는 말이었다 라며 어쩌면 그에 대한 오랜 빚을 갚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고 이 영화의 출발을 전했다.
3년 안에 만들겠다는 포부와 달리 영화 진행은 더뎠다. 당시 동원탄좌에 맞서 노동자 대표로 나선 이원갑씨, 경찰 고문 피해자로 오랜 세월 억울함을 간직하다 무기고 손괴 혐의 등에 대한 재심에서 지난 2022년 무죄판결을 받은 강윤호씨 등에 비해 이름 모를 피해자나 경찰 관계자, 이재기씨 유족들의 설득은 요원했기 때문.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음에도 개봉이 1년 더 미뤄진 것도 보다 객관적 관점에서 영화를 완성해야겠다는 판단때문이었다고. 박 감독은 처음 전화해서 만나기까지 1년, 그리고 촬영하는 데까지 1년이 더 걸렸다 고 운을 뗐다. 항쟁 과정에서 벌어진 투석전에 크게 다친 경찰들 또한 영화에 등장해 당시를 증언하는 장면도 그래서 담길 수 있었다.
역사적 자료로 남기자는 생각이 우선 강했다. 그러려면 출연자 모두에게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그들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최종 편집본을 DMZ영화제 직전에 이재기씨 유가족들에게 보여줬는데 동의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 촬영분은 뺀 채 상영했는데 훨씬 더 명료하더라. 하지만 계속 생각해보니 역사적 평가에 서로 다른 주체가 있고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분명한 건 이재갑씨 아내 김순이씨도 무고한 피해자인 건 맞으니까. 한 가지 주장만 싣는 게 맞나 의문을 갖고 다시 편집해서 허락을 구했다. 적어도 그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고 관객이 보고 판단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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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2 Novem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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